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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자로 살다


대학이나 기업 시스템이 주도하는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들 속에서,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한명의 시민으로서 자립적인 과학(시민의 과학) 을 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한 마디로 시민과학자로 살다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 ​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 과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가 암투병중(2000년 10월에 영면)에 써내려간 <시민과학자로 살다>는 명실상부한 도쿄대 출신의 유능한 원자핵과학자가 어쩌다가국가와 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민과학자 로 살아가게 됐는지와 원자력 시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투쟁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집약한 자서전적인 책이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써내려간 글인데다가, 지난 날에 대한 회고도 많고, 조금은 잡다한 글쓰기의 느낌도 들지만 시민과학자 로서의 삶을 선택한 어느 노 과학자의 진정성을 느끼기엔 충분한 책이다. 다카기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준 중요한 계기중의 하나는 미야자와 켄지와의 만남이 있다. 미​야자와 켄지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 영향을 준 동화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인데, 다카기가 그의 글중에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나고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을 우리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는가? ​ 이것이야말로 다카기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였던 것. ​그는 특히 켄지가 결성한 라스찌진협회(직접 밭을 갈면서 농민들을 가르치고 또 그들로부터 배우던 일종의 농민 공동체)의 활동을 보면서 그 자신의 진로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 실험과학자로서, 나 또한 상아탑 안의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실험실로 삼아,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어민들과 불도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농민의 처지를 내 것으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가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117p) ​ 한편 우리에게시민과학자라는 말은 조금은 생소하다. 반대되는 말을 생각해보면 그 어감이 더 확실히 느껴질 것 같다. 어용과학자라 하면 어떨까? 너무 센 표현인가? 하지만 실제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진실과는 상관없이 국가와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해서, 거짓을 진실인 양 얘기하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수차례 목격해왔기 때문에, 어용과학자라는 말만큼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 것인지를 주장하던 과학자들, 핵발전이야말로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떠들어대던 과학자들이 어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전문적인 입장에서 여기에 권위를 부여한 것은 1976년에 최종 보고서가 발표된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원자로 안전성 연구 , 이른바 라스뭇센보고서였다. 그 연구의 결론은 "원자로의 멜트다운(용융 사고) 같은 파국적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운석이 양키스타디움에 떨어질 확률보다 작다"는 말로 요약되어 선전되었다.(144p) 물론 우린,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그리고 일본의후쿠시마 사고까지 모두 알고 있다.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이제라도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반핵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과학자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원전 반대를 외치지 않는다. "과학자에게는 과학자의 역할이 있고 (주민)운동에는 운동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가 과학자의 역할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핵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것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시민과학자로 살다>는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도 이와 다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국탈핵>의 김익중 교수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다카기 진자부로, 김익중 교수같은 몇몇의 시민과학자가 사재를 털어가며 시민운동을 통해 핵의 위험성을 알리고 열심히 탈핵을 외치지만,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돈과 공권력으로 핵발전을 끝까지 밀어붙이려한다. 그러니 우리도 탈핵 이라는 문제를 더이상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보는데에서만 그쳐서는 안된다. ​ 반핵 은 단순히 원자력발전소를 반대하거나 방사능이 싫다거나 또는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거나 하는 차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양식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핵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우리 모두가 시민과학자로 살아감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깐의 편리함으로 지구 자체를 없애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 ​ ​


서장 격변의 한가운데서
교토―나가사키―스톡홀름 | 여행 또 여행, 여행을 끝내고
다카기학교를 시작하다 | 병상에서 생각한 것
핵(核)의 세기 | ‘시민과학자’에 대해서

제1장 패전과 건조한 바람
불꽃놀이를 구경하듯 | 1945년 여름 이전 | 1945년 여름 이후
복구의 과정에서 | 아버지의 죽음 | 나의 아카데미아
마른 바람과 아카기산

제2장 과학에 뜻을 두고
문과계냐 이과계냐 | 학문에 대한 동경 | 공부 시작
수험우등생이 되다 | 시대 사상의 흐름 속에서
수학지망으로 기울어지다 | 도쿄로 ― 환멸의 시작?
수학에 대한 꿈이 좌절되다 | 화학을 선택하다

제3장 원자로 옆에서
도쿄에 적응하다 | 화학에 대하여 | 60년도 안보투쟁
핵화학 전공 | 일본원자력사업에 취직하다 | 꿈과 모색
방사능 실험을 시작하다 | 방사능과의 격투 | 플루토늄
회사에서 차질이 생기다 | 원자력산업과 일본형 기업

제4장 바다로 산으로
원자력문제 | 원자핵연구소로 | 우주핵화학 | 해방감에 젖다
예상 밖의 방사능오염 | 연구의 논리 | 산으로 바다로
자기자신과 대면하다 | 도립대학으로

제5장 산리즈카와 미야자와 켄지
대학에서의 놀라움 | 산리즈카(三里塚)와의 만남
켄지(賢治)와의 만남 | 라스찌진협회 | 자립적인 과학
하이델베르크 | 비판의 힘 | 사의를 표명하다

제6장 원자력자료정보실
수행기(修行期) | 플루토늄과 다시 만나다
시보그에게서 느낀 위화감 | 플루토늄 독성에 대한 고찰
원자력자료정보실 창설 | 미하마 1호 원자로의 연료봉 절손사고
‘안전신화’의 붕괴 | NGO

제7장 전문가와 시민 사이에서
시계와 쇠망치 논쟁 | 원전 반대운동의 고양
‘반원전 출장판매점’ | 드디어 쓰러지다 | 새로운 마음으로
록카쇼무라 핵연료사이클시설 비판 | 암스테르담 1990년 11월
검은 배, 아카츠키마루 | 산업 측과의 토론 | IMA연구

제8장 내 인생에서의 반원전(反原電)
반원전(反原電)으로 돌아서다 | 개인과 국가 | 돈과 생명의 싸움
주민들에게서 배우다 | 무시와 유혹 | 괴롭힘
원전문제 속에 모든 것이 있다 | 누군가 도와줄 것이다

종장 희망을 잇는다
현재를 말한다(1) ― 원자력자료정보실
현재를 말한다(2) ― 다카기학교 | 죽음을 예감하고
이상(理想)에 대해서 | 위기감(1) | 위기감(2)
체념에서 희망으로 | 지금, 시민과학자로서

후기
옮긴이의 말